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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_Circuit Diagram 폴라로이드 레디 액션


폴라로이드 레디 액션_민병훈

 

 

 
 

“병훈씨 오늘 술 사주세요”

“아니 저기 오늘은 안돼요. 아 어떡하지? 오늘 시골에서 친구가 올라와서 같이 있어야 하는데…어떡하죠?”

 

  작가 민병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약속을 거절한다. 나와 선약이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순간적으로 청한 말에 민병훈은 정말로 고민한다. 그에게는 이미 약속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민병훈의 눈에는 수락과 거절 사이의 진지한 갈등이 지나갔다. 나는 너무나도 순수한 작가 민병훈을 만났다. 작가 민병훈은 한마디로 정말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나이이다.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끈근한 정이며, 관계라는 것은 서로의 배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민병훈은 거절을 잘 못한다. 거절을 하기위해서는 그의 생각을 조용히 되짚어보고 정말로 미안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의사를 살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민병훈은 우유부단하지는 않다. 그는 강한 주체성을 가지고 옳은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합리적이고 타당성 있는 설명을 덧붙인다. 민병훈의 주도면밀함이 그의 어눌한 것 같은 순수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외유내강이라고 했던가?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한 그의 태도는 넓은 포장도로를 깔아놓아 쉽게 사람들이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머뭇거리는 배려심에 그를 좋아한다.

 

  민병훈은 오랫동안 영화 포스터 촬영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음직도 한데 결코 세속적이거나 때 묻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 포스터 촬영 스텝인 그는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기 전에 카메라 앵글이나 조명을 확인하기 위해 미리 포즈를 취해보는 ‘동작 블로킹action blocking’을 수없이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음의 쑥스러움과 순수함을 그대로 화면에 드러낸다. 그의 폴라로이드가 수백 장에 이르지만 민병훈은 단 한 장도 장난기어린 웃음과 대충의 포즈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만큼 그는 작업에 임함에 있어 피사체의 완벽한 대치물로써 자신의 몸body을 내놓는다. 그는 자신의 몸이 배우의 몸으로 치환되었을 때 생겨나는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숨긴다. 민병훈은 역시 진지하고 노련한 사람이었다.

 

 

“병훈씨 어떻게 영화 포스터로 작업을 할 생각을 했어요?”

“저는 어릴적 TV에서 해준 외화 시리즈를 자주 봤어요. <천사들의 합창>, <캐빈은 13살>을 주로 봤는데, 또래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민병훈은 미디어에 의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자라난 사람들의 공유된 추억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허구적인 경험이라고 말한다. 사실 미디어의 경험은 개개인의 삶과 거리가 있는 인위적인 경험이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복제시키는 기계적 플라나리아와 같다. 그것은 마치 끊임없이 사랑노래가 쏟아져 나오는 대중가요와도 같으며, 새로운 주인공으로 재탕, 삼탕하는 드라마와도 같다. 우리는 실로 대량 복제사회의 이미지 합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합성들, 특히 연예인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여러 패러디를 내놓는 이미지 범람을 맞이하였다. 민병훈은 이렇게 실제 삶에서 멀어지는 허상의 경험이 새로운 부류의 공유된 경험으로 자리하고, 실제 경험의 중요성과 아우라가 상실되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온라인 게임 상에서 허상의 무기를 차지하기 위해 실제 사람을 해하는 사건들이 생겨나고 속도감을 느끼기 위해 어린아이가 실제 자동차로 경주를 시도한다. 민병훈은 이러한 허상에 익숙해진 경험은 바로 수동적을 만들어지고 집단적으로 셋팅된 ‘영화적 경험’에서부터 온다고 규정한다. 작가는 영화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영화적 경험을 구성하는 세트에 자신의 경험을 끼워 넣는다. 그것은 영화적 경험을 만들기 이전의 행위이며, 행위를 위한 포즈 취하기이다. 자체가 필름이자 원본인 아날로그적인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해 민병훈은 자신의 행위를 단 하나의 이미지로 남긴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구성하는데 있어 민병훈은 자신의 성격을 숨긴다. 그것은 영화 포스터에 나오는 배우의 행위와 자신의 행위를 동일시시키며, 스스로 영화라는 허구성의 세트속의 오브제object로써 작용하게 한다. 자신과 배우가 동일한 사건을 이야기하게끔 유도하고, 각각의 다른 원본을 만들어내는 민병훈의 <폴라로이드 포스터Polaroid Poster> 시리즈는 삶의 세트에서 꿈꾸는 작가 개인의 살아있는 경험이며 연속성을 띠는 역사인 것이다.

 

 

“병훈씨 언제 갤러리로 오실 수 있으세요?”

“어 오늘은 촬영이 있고요, 내일은 어딜 가야하고, 모레는 촬영 미팅이 있고, 그 다음날 가면 안 될까요?”

하나하나의 일정을 모두 설명하는 민병훈은 그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아있는 경험으로 채우기 위해 오늘도 진지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백 곤(paikgon@naver.com)

 

  이글은 2006. 6.16~7.15 에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린 <Circuit Diagram_Seoul>전시 도록에 실린 글이다.  


 

2010/03/27 10:25 2010/03/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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