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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야기] 21유리 천장?, 유리 벽장?, 유리 액자?



평소엔 안보이지, 닥치면 기막히지
고액연봉 받는 '골드칼라' 여성 늘어 입력 : 2004.03.22 17:21 21'

▲ 그림=김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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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야기
골드 칼라 여성. 그런 이름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신조어다. 예전에는 부모나 남편으로부터 막대한 유산 상속을 받지 않으면 여성이 골드 칼라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황금으로 만들어진 깃을 달고 자기 직업에서 성공하여 높은 연봉을 받고 고위직에 있어서 자유롭고 활달하게 자기 뜻을 관철하고 사는 여성. 예를 들어 여성 최고 경영인이나 여성 CEO, 여성 고위 임원… 그런 골드 칼라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말만 들으면 그럴 듯하고 그런 것 같다.

골드 칼라 여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후배가 있다. 일 때문에 알게 되어 이십여 년 동안 서로 친하게 지내왔다. 그녀는 어느 회사의 고위 임원이다. 여성적 감각과 상상력이 중요시되는 직종이기에 성 차별보다는 오히려 여성이 더 유리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곳에서 그녀는 팀을 거느리고 있고 연봉도 높다. 그녀의 별명이 ‘1%의 번개’라니 일을 밀어붙이는 벼락치는 스타일이나 여론을 치고 나가는 공격적 전략이 남성 못지 않게 탁월하다는 뜻이겠다.

유리 천장 같은 것은 못 느꼈다. 그녀는 프로니까. 승진이나 스카우트에서 성이 문제가 되어 불리한 일을 당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남성 동료, 남성 상관, 남성 선후배들과도 잘 지내고 자기가 만든 작품도 널리 알려져 '이만하면…'하고 자부하고 있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그녀의 회사 내에 성희롱 사건이 벌어졌다. 한 간부가 신입 여직원을 약간 높은 강도로 성희롱한 것이다.

여성이기에 신입 여사원의 처절한 고백을 남보다 먼저 들었고 문제가 문제이니 만큼 그 사건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내부에서 먼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 사건의 전말을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임원 회의에서 알렸다.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내부에서 먼저 상의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순진한 오해였다.

‘성희롱’이라는 사적인, 은밀한 문제의 핵심은 자취를 감추고 뜻하지 않게도 즉각적으로 ‘남성 대 여성’이라는 전선이 펼쳐진 것이다. ‘언필칭 가해자’라는 남성만이 아니라 그 남성 주변의 대다수 남성들이 순간적으로 그녀를 적으로 진지를 구축했다. 상관이고 부하고 동료고 모두 갑자기 ‘성별’로 나뉘어 삼팔선이 펼쳐졌고 포연과 포성이 자욱했으며 피해 여성은 오히려 단칼에 매도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유포(?)했다는 공격을 받았고 적잖은 협박도 받았다.

문제의 초점은 한 약한 여성이 자기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남성에게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것인데, 피해자의 고백은 왜곡되었고 누군가가 ‘언필칭 가해자’를 위해하기 위해 꾸민 음모론으로 발전되었고, 피해 여성과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매도되었다. 심지어는 그녀가 이번 일을 기화로 ‘회사를 꽉 잡으려고 한다’는 웃지 못할 음해론까지 유포되었다. 어떤 조직이건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대개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어 간다고 한다.

이 ‘성 희롱’ 사건은 후에 회사 내 징계위원회에서 ‘언필칭 가해자’가 징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남성들의 필사적인 권위주의 카르텔, 성 문제에서는 무조건 남성에게 관대하기만 한 도덕적 불감증, 은밀한 문제이니 만큼 부정하고 나가면 된다는 남성중심주의적 공격 전략, 피해자는 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등등의 것에 큰 상처를 받았고 그동안 존경하고 사랑했던 상관, 동료, 선후배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이번 사건으로 그녀는 ‘여성 문화/ 남성 문화’라는 뚫을 수 없는 유리 장벽을 느꼈고 가부장 문화의 편견 속에서 ‘인디언 보호 구역’ 같은 유리 벽장 속에 자신이 소수로서 갇혀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유리 벽장은 평상시에는 안 보이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건이 터지는 경우 어김없이 여성의 눈앞에 계시(?)된다.

“겉으로는 유리 천장도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유리 천장, 유리 벽장뿐 아니라 유리 액자 안에 박제되어 살았던 느낌이야. 정말 힘없고 배경도 없는 어린 여성이 직접 피해를 당했을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암담하더군….” “그래서 법이 있는 거야.” 내가 말했을 때 친구는 의미심장하게 “그래, 그래서 법이 있겠지? 그리고 법은 꼭 약자 편을 들어주는 거겠지?” 하고 웃는다. 법은 법이고 문화는 문화다. 법은 멀고 문화는 가까워서 그런 문제에 관련된 여성들은 법의 구조(救助)가 오기 전에 이미 가부장 문화의 공격을 받고 지칠 대로 지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인간이 정녕 남성, 여성 하는 젠더를 떠나 공동(公同) 선(善)이라는 것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남겼다.

(김승희 시인·소설가·서강대교수)


2011/02/21 10:31 2011/02/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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