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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 경주


서울 → 포항 → 경주 → 석굴암 → 불국사 → 첨성대

석굴암에서 맞은 일출
다음날 새벽 5시, 눈곱만 간신히 떼고 석굴암으로 향했다. 석굴암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싶은 욕심에 단잠을 깨운 것이다. 석굴암입구에 도착하니 안내인께서 너무 일찍 왔다고 한다. 일출은 한 시간 뒤에 볼 수 있다나. 일찍 도착한 덕분에 하늘에 촘촘히 떠있는 별들과 초승달을 보니 손해 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석굴암석굴 (石窟庵石窟)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그는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는 한편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세웠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유리 벽 사이로 불교조각의 최대 걸작품을 감상한다.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주실 안에서 선한 미소를 띄고 계신 본존불을 바라보니 인간에 대한 자비를 몸소 설파한 부처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원형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보수하며 지나친 개입으로 인해 원형이 손실되어 천 년 이상의 세월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을 잘 모르는 입장이지만 왜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선대의 유산을 유지,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개입으로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석굴암석굴은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예술, 과학, 종교, 건축기술이 조화를 이룬 최고의 걸작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불국사 [佛國寺]
토함산 기슭에 자리잡은 절로 입구에서부터 고풍을 느끼며 내 자신이 과거 신라로 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낀다.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이라 하며, 3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완공했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칸, 무설전(無說殿) 32칸,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다고 한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불국사에 있는 화강석 석교로 동쪽에 있는 2단의 석계가 바로 이것이며 밑의 것을 청운교, 위의 것을 백운교라 한다. 너무나 자주 접한 모습이기에 마치 현실에서 보는 것이 아닌 사진을 보고 있는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늦가을의 자연과 조화를 이뤄 더더욱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발산된다.

불국사 다보탑
화강석 석탑으로 높이 10.4m, 기단 폭 4.4m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두 탑을 현재와 같이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法華經)》의 내용에 따른 것이라 한다.

교과서와 동전에서 자주 대했던 터라 호기심을 가지고 경내로 들어서는 순간 쇠파이프로 둘러싸여 있는 다보탑을 보고 밀려오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어 한동안 구시렁구시렁 불만을 토해냈다. 또 다시 보수공사를 하는가 보다.

불국사 삼층석탑
높이 8.2m의 화강석 석탑으로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전체적으로 기단이나 탑신에 아무런 조각이 없어 간결해 보이며 각 부의 비례가 균형이 잡혀 안정되고도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신라석탑의 표본이 되는 탑이라 한다.

 

경주첨성대 (慶州瞻星臺)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모양의 원통부(圓筒部)가 올려지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가 얹혀진 모습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재다.

첨성대의 유래와 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들판에 홀로 서있는 첨성대를 보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생각보다 높은 편도 아니었고, 평지에 있다는 것도 의아했다. '과연 저 구조물을 이용해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남았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밑거름되어 후세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경주의 명물, 황남빵
경주시 황남동에서 처음 만들어 졌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새벽부터 석굴암에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들러 출출하던 차에 아주 맛있게 먹었다. 빵 속에 들어있는 푸짐한 팥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한 입에 꿀꺽~~~ 맛이 죽여 준다. 

 

경주는 신라 천 년의 고도로 명승고적이 많다. 주어진 시간이 짧아 부지런하게 움직이다 보니 못다 본 고적들도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눈으로 본 것과 느낌만으로 정리를 하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와 일행에게는 의미있는 여행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천쌀밥정식을 먹고 여행을 마무리 한다.


2012/02/01 10:26 2012/02/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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